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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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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안
11시간 ·
코로나19 유행 당시 백신 이물질 신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이물질이 발견된 백신과 동일한 제조번호 백신이 약 1420만회분 계속 접종되었다 한다.. 질병청은 이러한 이물 신고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통보하지 않고 제조사에만 알려줘 제조사의 조사 결과를 회신받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했다. 이에 따라 위해 이물질이 발견된 백신에 대해 접종 보류 등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물질 신고 이후에도 해당. 백신을 계속 접종했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아 사실상 은폐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질병청은 "이물 백신, 품질 이상 입증된 경우 없었다" 고 답변했다..
정말 뻔뻔한 사람들이다.. 당시에 병원에서 백신부작용을 경고하거나 입증하게 만들었나?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대고 생각해 보라..
야당과 언론에서는 당시 질병관리청장 이었던 정은경 보건복지부장관을 비난하고 고발한다느니 하지만 과연 당시 질병청장의 책임일까? 아마도 정은경질병청장은 이물질발견 사실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보고했을 것이다.. 질병청장이 무슨 권한과 강심장이 있다고 이런 중대한 사안을 혼자 은폐하고 숨겼을리 없다.. 당시 정권에서 한창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방역하고있다고 선전하고 방역 최일선에 있던 정은경질병청장을 방역영웅으로 띄우던 시절이라 청와대차원에서 은폐지시를 했을 것이다....정은경이 아닌 정권차원에서 은폐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언론에서 백신들의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서 수도 없이 지적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두려워하면서도 제대로 검증이 안된 채 쏟아져 나온 백신 역시 두려운 마음으로 접종을 했다..
당시 국내에서 접종된 백신들은 그 이름들을 아직도 기억한다..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노바백스등.... 국민들에게 백신을 선택할 권리도 없었다..백신맞으러 가면 질병청에서 정해준 백신을 맞아야 했다..내 기억에 내가 처음 맞은 백신이 초기부터 효과가 의심되던 아스트라 제네카였다.. 다음에 화이자.. 4차에는 모더나...
백신을 하나 둘 맞기시작하며 나에게는 악몽이 시작되었다..그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다시한번 당시 상황을 기억해 본다..
나는 4차 백신을 맞고 얼마 후 쓰러졌다..4차백신이었던 모더나를 맞고 쓰러졌다는 것이 아니라 1차 백신을 맞고 몸에 조금씩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몸이 이상해지니 2차백신부터는 안맞으려 했다가 언론에 이탈리아 요양원에서 수백명이 죽었다느니..이탈리아 병원에 시신이 쌓여있다느니 공포스런 뉴스들이 들려오니 백신을 마냥 피할 수없었다..
처음에는 목이 아프기시작했다.. 목디스크인줄 알고 정형외과에 가서 진통제를 맞곤했다.. 4차백신 모더나를 맞자마자 며칠 후부터 하반신부터 마비가 오더니 어느날부터 삼성의료원 복도를 지나다 나도 모르게 넘어지곤 했다.. 이상하게 넘어진 상태에서 혼자 일어설 수 없었다..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나를 일으켜 세워줬는데 몇걸음 걷다 또 쓰러지곤 했다.. 당시에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생각했지 마비때문이라고 생각못했다..
손의 움직임이 어눌해졌다..식사를 하는데 젓가락을 놓치는 것이 젓가락질이 안되었다.. 말도 발음이 잘 안되었다.. 가장 놀란 것은 침대에서 몸을 돌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화장실을 못가게 되었다.. 몸이 목 아래로 완전히 마비되었다..
더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몸 거동이 불가능해지니 119를 불렀고 삼성의료원 응급실로 실려갔다..그때가 2022년 5월 초다..오전 11시경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응급실 밖에 대기하고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했다.. 하루종일 추운 밖에서 계속 대기하다 밤 10시 경에 응급실내로 들어갔고 밤 12시 넘어 치료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여러분야의 많은 의사들이 다녀갔고 다음날 오후에야 최종적으로 경추척수증에 걸렸다 했다.. 마비가 계속 진행되고 있고 하반신 신경이 죽고있으니 다음날 즉시 수술에 들어갔다..수술을 담당한 전문의 소견으로는 아마도 코로나19 백신이 뇌와 몸을 연결하는 중추신경인 척수를 때린 것 같다고 했다..목을 지나는 신경다발 척수관이 뭔가의 영향을 받아 신경관이 좁아지고 신경기능이 저하된 것이다..
긴급으로 수술을 했지만 증상악화를 막은 것이지 몸의 근육이 살아난 것 아니다..목 아래 모든 근육이 사라졌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상태였다..삼성의료원에서 한달 동안 입원해서 재활을 시작했는데 한달이상 입원이 불가능하다해서 재활을 위해 강동의 모 재활병원 중환자실로 옮겼다.. 이제 몇개월이 될지...몇년이 될지 모르는 재활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일 일어서기부터 걸음마등 죽어라하고 열심히 재활을 시작했는데..
나에게 두번 째 위기가 찾아왔다..요양병원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다..내가 외출을 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재활훈련사로부터 감염된 것 같았다..아침에 일어나니 내 체온이 40도를 육박했다..코로나검사를 하니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이 되어.. 즉시 격리에 들어갔다.. 저녁 때가 되니 앰블런스가 와서 나를 성동구의 집단수용소로 옮겼다. 이름이 굿모닝요양병원같은데 코로나19 동안 코로나환자 집단수용소로 개조되었다..
2인실정도의 병실에 들어가니 6명의 코로나환자들이 있었다..코로나증세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냥 집단격리수용이다.. 의사는 본 적이 없고 간호사만 완전한 방역무장으로 하루에 두번 들어왔다.. 간호사는 환자상태를 살피는 것도 없고 매일 하루종일 코로나치료제 람데시비르를 링게르형태로 투여했고 링게르를 제거하러 저녁에 또 한번 들어왔다.... 의사와 간호사의 진찰이 없으니 그냥 방치상태였다..수용 첫날부터 죽은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 아주 불쾌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격리병원에 수용된 것은 그나마 행운이란다..실제로 요양병우너에서 내가 수용시설로 떠난 후 코로나19가 병원전체로 확산되었는데 누구도 수용시설로 옮겨지지 않았다..나중에 요양벙원에서 간호사에게 그때 몇명이나 사망했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수용시설에서 다행히 치료가 되면 살아 걸어나가는 것이고 .. 치료가 안되면 실려나가 가족대면도 없이 화장터로 직행이라 했다..약 10일간 있었는데 병실의 모든 환자들은 서로 대화가 전혀없고 초조와 죽음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가족을 본지 2주가 넘었는데 가족 얼굴을 다시 보지못하고 이별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많이 괴롭고 슬펐다..
10일이 지나고 코로나테스트를 하니 다행히 코로나가 치유되었다고 한다..살아난 것이다..우리병실에서 사망자는 없었다..그때서야 환자들이 감격해서 서로 인사하고 악수도 했다..저녁에 아내가 와서 나를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으로 다시 옮겼다..
당시 코로나사태로 긴박한 시절이라 검증이 제대로 안된 백신을 사용해야 했던 조치는 이해를 한다..그것에 대해 뭐라고하는 것이 아니라 왜 진실을 은폐했냐고 따지고싶은 것이다..백신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 그대로 국민에게 밝히고 불가피성을 설명하면 뭐라고 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그리고 백신을 계속 맞을지 여부는 국민이 자신의 책임하에 선택하면 된다..많은 백신 부작용피해 사례가 있었음에도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고 문재인정권 누구도 백신문제에 대해 책임진 사람이 없었다 ,..자신들의 실수는 감추고 오로지 업적홍보에만 매달렸다..
내가 나중에 삼성의료원 담당의사에게 백신이 경추척수를 유발시킨 것 같다는 진단서를 만들어 줄 수있냐고 물었더니 못해주겠다고 했다.아주 곤란해 하며 무슨 이유인지 설명은 못한다며 ... 보건소제출용 진단서를 써주지 못한다고 했다...내가 알아보니 당시 코로나 백신을 맞은 사람들 중 수천명이 백신 후유증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했지만 정부로부터 그 피해를 보상받은 사람은 불과 몇명일 정도로 극소수다.. 정말 문재인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아직도 이해못하고 절대 용서하지 못하겠다....
문재인정부는 민생지원금은 펑펑 쓰면서 백신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에는 극도로 인색했다..코로나 보상은 대상자가 소수이고 표가 안되니 안했줬던 것 같다.. 코로나19와 백신조차 표를 의식한 정권홍보로 이용했다..정말 위선적이고 사악한 정권이었다..
아니러니하게도 나에게 신장이식해준 분이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한다..코로나19에 걸리고 완치되었는데 원인도 모르게 시름시름 앓다가 몇달 후 돌아가셨다..어린아이 둘을 둔.. 불과 42세의 엄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