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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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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상
5시간 ·
<최고의 복수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라, 그럼 적의 시체가 곧 떠내려 올 것이다.”
노자가 한말로 알려져 있지만 진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출처와 관계없이 곱씹어 볼만하다.
삼국지의 메이저 군벌들 중 원술만큼 일관되게 평가가 나쁜 인물도 드물다. 원소와 유표, 공손찬이 한시대의 거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인 반면 원술은 무능하다는 평가 일색이다.
원술은 가진 게 많았다.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이었고 풍요로운 남양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젊었을 때는 호걸로 여겨져 주변에 따르는 이들이 많았고 군벌들의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악수만 두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원술을 몰락으로 몰고 간 건 원소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원소와 원술의 관계는 복잡했다. 둘 다 원봉의 아들이었는데 나이는 원소가 위였다. 하지만 원소는 어머니가 노비였기 때문에 원술이 적통이었다. 이후 원봉의 형인 원성이 자식 없이 일찍 죽자 대를 잇기 위해 원소가 양자로 들여졌다. 승계를 둘러싸고 잡음이 나오지 않게 호적에서 파버린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원씨 집안이 몰살당하고 원소와 원술, 둘만 남게 되자 항렬상 원소가 위라는 게 문제가 됐다.
둘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된 계기는 원소의 6년상. 원소는 원봉의 정부인(즉 원술의 친모)이 죽자 3년상을 지냈고, 양아버지인 원성을 위한 3년상을 연이어 지냈다. 이걸 듣고 호기심을 품은 수많은 빈객들이 묘지로 찾아왔는데, 이때 원소는 환관에게 불만을 가진 세력과 교류하며 정치적 거물로 거듭났다.
원래 원씨 집안은 환관과 협력하는 관계였고, 따라서 적통인 원술은 대놓고 자기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원술은 슬금슬금 후계자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원소가 미웠을 것이다. 심지어 자기 어머니의 무덤을 가지고 아들 흉내를 했으니.
그 결과 원술은 원소를 뛰어넘겠다는 집착에 눈이 멀고 말았다. “세상이 나를 따르지 않고 비천한 종놈(원소)을 따른다”는 말에서 그가 원소에게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원소가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새 황제를 옹립하려고 하자 원술은 기존 황제인 헌제를 지지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막상 유우가 헌제를 모셔오려고 아들을 보내자 도중에 인질로 사로잡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 유우와 사이가 나빴던 공손찬이 원소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술에겐 원소를 괴롭히는 게 중요했을 뿐, 황제를 모시건 갈아치우건 아무래도 좋았다.
원소의 힘이 커질수록 원술의 오기도 심해졌다. 평이 나빴던 공손찬과 손을 잡는 것으로 모자라 도적(장연)과 흉노족(어부라)까지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원씨 집안의 브랜드를 훼손하는 일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도 원소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자 더욱 자학적인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군웅할거의 시대였지만 그래도 적의 영지를 약탈했는데, 원술은 자기 백성을, 그것도 날을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약탈했다. “널리 은혜를 베풀었다”, “관후하여 존경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원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의 광기는 황제를 참칭하는 것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헌제를 수중에 넣은 조조는 원소를 진정시키기 위해 대장군의 지위와 하북 4주의 통치권에 더해 구석의 일부까지 내렸다. 이렇게 되자 원소를 넘어서는 건 유일한 방법은 직접 황제가 되는 것뿐이었다.
황제를 참칭함으로써 그나마 남아있던 원술의 이미지는 완전히 더럽혀졌다. ‘황제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때문에 군대는 굶주림에 시달렸고 백성들은 서로 잡아먹을 정도였다. 황제가 된 이상 필요할 때 굽히고 물러서는 유연함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결국 모두가 원술의 적이 되었다. 이쯤 되자 굳이 원소가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만일 원술이 원소에게 집착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처했더라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 거병했을 때에는 원술이 여러모로 원소보다 우위에 있었다. 원씨 집안은 적통인 원술을 밀어줬다. 강적들로 둘러 쌓여 있던 원소와 달리 원술의 이웃들은 구슬릴 여지가 있었다. 원술이 한황실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세력을 키웠거나 아니면 형주나 강남으로 내려가 내실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적을 향한 분노와 집착은 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한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방을 내 삶의 중심에 두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당신이 극복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어제의 당신이다. 저놈 잘되는 꼴만은 볼 수 없다는 사람은 결코 마지막에 웃을 수 없다.
서로 물고 뜯었던 두사람은 결국 남 좋은 일만 한 꼴이 됐다. 둘의 시체를 짓밟고 올라선 게 조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