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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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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촉구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폭행이나 협박은 물론, 직장 내 상하 관계 같은 위계나 위력조차 없었던 관계에도 오직 사후적인 동의 여부만을 따져 강간이라는 이름을 붙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거창한 학술적 용어와 인권의 언어로 포장했지만, 상식의 체에 걸러보면 남는 질문은 매우 건조하고 단순하다. 물리적 강제력도, 권력 관계의 억압도 없었는데 국가가 그 침실의 일들을 무슨 수로 입증할 것인가.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따랐던 체념적 순응을 사회가 동의로 착각해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 대한 문학적 통찰로는 훌륭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형법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법은 내면의 일기장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로 작동하는 차가운 시스템이다. 겉으로는 저항 없이 순응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체념하고 있었다는 그 미세한 심리 상태를, 사후에 도대체 어떤 잣대로 증명한단 말인가.
판사는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독심술사가 아니다. 법정 역시 남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 위해 돗자리를 깔고 작두를 타는 굿당이 될 수 없다. 명백한 강제력의 흔적을 지워버린 채 오직 심리에 의존해 범죄를 재단하겠다는 것은, 결국 피고인 스스로 침실에서 완벽한 동의를 얻어냈음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근대 사법 체계를 지탱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지는 섬뜩한 순간이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대중이 이들의 주장에 서늘한 냉소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법안의 스피커 역할을 자처하는 여성 단체들의 그 지독한 궤적 때문이다.
과거를 복기해 보자. 좌파 진영의 유력 정치인들이 막강한 위력과 위계를 동원해 부하 직원의 삶을 유린했을 때, 평소 일상의 사소한 농담조차 성인지 감수성으로 난도질하던 그 요란한 단체들은 무엇을 했던가. 진짜 폭력과 위계가 작동한 명백한 범죄 앞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피해호소인이라는 한국 어문학 역사상 가장 기괴한 신조어까지 창조해 내며, 권력자들의 방패막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진영에 불리한 권력형 성범죄 앞에서는 스스로 시력을 잃고 혀를 깨물었던 자들. 그런 그들이 이제 와서 폭력도, 위력도 개입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의 사적인 침실 앞에서는 현미경을 들이밀며 엄격한 도덕적 대법관 행세를 한다.
이념이 이성을 집어삼키면 운동은 길을 잃고 사이비 종교로 전락한다. 왼쪽 권력자의 명백한 위력 앞에서는 관대하게 눈을 감으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관계에는 입증조차 불가능한 관심법을 들이대는 이 기막힌 내로남불. 아무리 숭고한 가치를 내세워도 최소한의 이성적 성립조차 불가능한 궤변을 고집할 때, 대중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의 여성운동이 대중의 공감대를 완전히 상실하고 고립되어 버린, 가장 건조하고도 타당한 이유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10/0000137003?sid=100





